요즘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시 중에 황지우 시인이 쓴 시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는 익숙하고 누구에게는 생소한 시인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름은 몰랐지만 김대중 대통령이 서거한 후 쓰인 추모시 중 가장 유명한 '지나가는 자들이여, 잠시 멈추시라'를 쓴 시인이란 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그러면 황지우 시인의 일생과 작품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시인이 추구하는 생각과 느낌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황지우 시인의 일생과 작품
1952년 1월 25일 전라남도 해남군 북일면 신월리 배다리마을에서 4형제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956년에 전라남도 광주광역시로 이주했고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제수해서 들어간 1972년 서울대학교에서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으며 본격적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1973년 박정희 유신정권에 반대하는 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투옥되었고 그 이후 강제로 입대하였습니다. 또 1980년 5.18 민주화운동 가담으로 구속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서울대학교 석사과정 중 제적당해 1981년 서강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게 되었습니다. 1997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가 교수였고,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제5대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을 역임했습니다.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 [새들도 세상을 뜨는 구나] 는 형식과 내용에서 전통적 시와는 다릅니다. 기호, 만화, 사진, 다양한 서체 등을 사용 해서 시 형태를 파괴함으로써 풍자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됩니다.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는 1999년 상반기 베스트셀러였으며 '뼈아픈 후회'로 김소월문학상을 수상했고 제1회 백석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작품은 [새들도 세상을 뜨는 구나],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나는 너다], [게 눈 속의 연꽃],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시집이 있고 희곡집으로는 2000년 [오월의 신부]가 있습니다.
한 가지 재미난 사실은 황지우 시인은 본명이 황재우인데 한글 타자기의 오타에 의해 황지우가 되었다고 합니다. 한 가지 더 추가 하자면 황지우 시인의 동생 황광우는 철학자이자 노동운동가로서 '소외된 삶의 뿌리를 찾아서',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과 같은 책을 썼으며 유명한 '철학 콘서트'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 구나
1983년 [문학과 지성사]에서 출판된 이 시집은, 1980년대 군사 독재로 인해 한국사회의 암울한 현실을 표현했으며 그곳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소망과 벗어나기 어려운 현실을 냉소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시적화자는 화면 속의 새들을 쳐다보며 자신만의 상상을 펼쳐 보이면서 자신의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을 나타냈습니다. 하지만 이내 무력감도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 구나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 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겨울 나무로 부터 봄 나무에로
1985년 발표된 이 시집은 1980년대 불행한 현실이나 부당한 권력에 맞서려는 의지가 투영되어 있습니다. 즉 이 시는 겨울을 이겨내고 꽃을 피우는 나무의 생명력을 통해 불행한 현실을 이겨내는 삶의 태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겨울- 나무로 부터 봄- 나무에게로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발벗고 영하 13도
영하 20도 지상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 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 받은 몸으로, 벌 받은 목숨으로 기립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에서
영상으로 영상 5도 영상 13도 지상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 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 피는 나무가 자기 몸으로
꽃 피는 나무이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이 시는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황지우 시 중에 하나이며 기다림이라는 보편적인 정서를 그리고 있습니다. 기다림의 대상은 연인이거나 그 어떤 절실한 대상과 시간이기도 합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한국생명보험회사 송일환 씨의 어느날
1983년에 발표한 황지우의 이 시는 1980년대의 부조리한 현실을 비판한 시이며, 그 비판을 이미 존재하는 여러 텍스트의 부분들을 콜라주 하여 실험한 실험 시입니다.
한국생명보험회사 송일환 씨의 어느날
1983년 4월 20일, 맑음, 18℃
토큰 5개 550원, 종이컵 커피 150원, 담배 솔 500원, 한국일보 130원, 자장면 600원, 미쓰 리와 저녁 식사하고 영화 한 편 8,600원, 올림픽 복권 5장 2,500원
표를 주워 주인에게 돌려
준 청과물상 김정권(46)
령 - 얼핏 생각하면 요즘
세상에 조세형같이 그릇된
셨기 때문에 부모님들의 생
활태도를 일찍부터 익혀 평
가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
이다 (이원주군에게) 아
임감이 있고 용기가 있으니
공부를 하면 반드시 성공
(만평)
대도둑은 대포로 쏘라
- 안의섭, 두꺼비
(11) 제10610호
▲일화 15만 엔 (45만원) ▲5.75 캐럿물방울다이아 1개 (2천만원) ▲남자용파텍시계 1개 (1천만원) ▲황금목걸이5돈쭝 1개(30만원) ▲금장로렉스시계 1개 (1백만원) ▲5캐럿에메랄드반지 1개 (5백만원) ▲비취나비형브로치 2개 (1천만원) ▲진주목걸이꼰것 1개 (3백만원) ▲라이카엠5카메라 1대 (1백만원) ▲청자도자기 3점 (시가미상) ▲현금(2백50만원)
너무 거하여 귀퉁이가 안 보이는 회의 왕궁에서 오늘도 송일환 씨는 잘 살고 있다. 생명 하나는 보장되어 있다.
이 시의 이해를 돕기 위해 1연은 송일환 씨의 하루, 2연은 송일환씨의 하루 생활비 내역, 3연은 도덕적으로 살아가는 소시민의 미담기사, 4~7연은 송일환 씨가 읽는 신문기사 내용, 8연은 만평을 통해 부조리한 현실 비판, 9연은 신문 발행 호수, 10연은 장물 목록, 11연은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목숨만 부지하며 살아가는 소시민을 나타내었습니다. 이 구성을 생각하면서 다시 시를 읽으면 더욱더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결론과 황지우 시 더 읽어보기
황지우 시 들 중 네 편이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습니다. 이것말고도 좋은 시가 많으니 찾아서 읽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김소월문학상을 받은 [뼈아픈 후회]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뼈아픈 후회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난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뿌리째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신상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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